본문 바로가기

여가연구 (Leisure Studies)

레저소비의 사회사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

한국경제신문 <MONEY> 2018년 7월호

근대사회와 레저소비

18세기 후반 조선에서는 농업생산성이 증가하고 상공업이 융성한다. 신분질서는 느슨해지고 농민은 빈번하게 봉기한다.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내재적 변동이다. 잘사는 강한 나라를 만들고자 오랑캐에게 배우는 것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던 북학파는 개화파에게 바통을 넘긴다.

 

그러나 일제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자주적 근대화는 좌절한다. 일제가 강요한 식민지 근대화는 우리사회를 둘로 가른다. 실력을 길러서 자주적 근대화로 나가려는 계몽주의자와 시대를 잊고자 유행에 몸을 던진 모던보이로 나뉜다(황기원, 2009: 132-134). 거의 모든 근대국민국가와 마찬가지로 나뉜 둘은 미디어를 통해 근대를 만난다. 지식인에게 신문과 라디오 그리고 유성기는 지위상징(Status Symbol)이면서 동시에 어른용 장난감이다.

좌절된 자주적 근대화 - 조선 지식인 근대미디어에 빠지다

18831031일 한성순보를 발행한다. 관보가 아닌 신문의 역사를 시작한 날이다. 1884년 갑신정변과 함께 인쇄시설이 파괴된다. 1886125일 한성주보로 다시 역사를 이어간다. 그러나 진정한 신문의 역사는 서재필과 함께 시작한다. 189647일 독립신문 창간일은 그래서 신문의 날이 된다. 1898년 매일신문, 제국신문, 황성신문 등 창간 봇물이 터지던 해에 매일신문에 이어서 독립신문도 일간으로 발행한다.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신문은 매일신보(1910)와 조선일보(1920), 동아일보(1920), 시대일보(1924) 등 종독부기관지와 민간지로 양분된다.

 

<독립신문> 초판

신문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계몽을 위한 수단이었다. 신문도 변화를 겪는다. 근대도시문화의 일부로써 점차 상품화된다. 식민지 지식인은 다방에서 커피를 마신다. 그는 손에 항상 신문을 들고 있다. 신문지상 만문만화(漫文漫畫)는 예리하고 풍자적이기는 하지만 심하게 불쾌하거나 잔혹하지 않게 시대의 얼굴을 예리하게 포착한다(신명직, 2003: 6-11). 소설과 시 등 근대문학을 접하는 통로 역시 신문이다.

 

<별건곤> 1927년 7월호에 실린 만문만화(김진송. 1999. ≪현대성의 형성 -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현실문화연구. 308쪽에서 재인용).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을 풍자하고 있다. "이러고 다녀야 배우인 줄 알아주니 배우노릇 하기도 한벌 고생이 아니야.... 아이고 사이상보다도 내가 더 고생이지요. 작은 구두 신고 궁둥이 짓을 하노라니 발목이 견디어나야지"

192685일 극작가 김우진과 성악가 윤심덕이 현해탄에 뛰어든다.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이다. 윤심덕은 다뉴브 강의 잔물결을 번안한 사의 찬미를 일본에서 녹음하고 돌아오던 길이다. 이 음반은 조선에서 10만장이나 팔린다. 유성기도 없으면서 음반을 샀다는 말이 된다. 조선 음반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한 일본 음반회사들은 경쟁적으로 조선에 진출한다. 1928년 빅타 총 대리점, 1929년 콜롬비아 경성지점, 1931년 포리도루 조선영업소 등. 1935년 조선에서 팔린 레코드는 15백만 장, 이 중 조선말로 부른 노래는 4~50만 장(최병택·예지숙, 2009: 158-178). 손에 신문을 든 조선 중년은 집에 유성기를 들인다.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 가사지(출처 : 한국유성기음반). 2016년 1월 28일 일본 야후 재팬 온라인 경매에서 ‘사의 찬미’ 유성기 초반이 550만 엔(약 6080만원, 수수료 포함)에 낙찰됐다. 한국 대중가요 음반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고승희 기자. 2016. "윤심덕 사의 찬미 야후 재팬 경매 한국 음반 역대 최고가 기록". <헤럴드경제> 1월 28일자).

1927216일 경성방송국에서 첫 라디오 전파를 송신한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라디오를 가진 사람이 275명밖에 없던 때다. 1933년에는 32천대로 늘어나고 1945년에는 228천대에 이른다. 읽는 레저도구에서 듣는 레저도구로 바뀐다.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레저세계로 들어간다. 진짜 근대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레저상업화가 진행된다.

서구적 근대화 - 화투에서 텔레비전을 거쳐 골프로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는다. 자주적으로 쟁취한 광복이 아니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지만 곧 바로 한국전쟁을 겪는다. 얼마 되지도 않는 산업시설 마저도 파괴된다. 구군부가 주도하는 첫 번째 발전전략을 실행한다. 섬유·합판·신발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을 일으킨다. 경부고속도로·항구·발전소 등 산업인프라를 구축한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을 통한 수입대체전략을 시행한다. 중화학공업화에는 성공했으나 두 차례 오일쇼크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권위주의적인 정권을 떠받치고 있던 독재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서울에 봄이 찾아온다. 1979년 서울의 봄은 짧았다. 또 다시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는 급속한 경제성장에 성공한다. 정치적으로는 순탄치 않았다. 1985년 학원안정법을 추진한다. 1986년 수상정부제라는 개헌안을 제시한다. 모두 무산된다. 4.13 호헌 조치를 발표한다. 더 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한다(최석호, 2006: 113-117). 19876월 민주화운동은 19932월 민선민간정부 출범으로 결실을 맺는다.

 

통행금지로 하루 4시간을 빼앗긴다. 장시간노동으로 탈진한다. 1960년대와 70년대 20년 동안 할 수 있는 여가활동은 거의 없었다. 장시간노동에 반비례해서 노동생산성은 낮았다. 형식적인 출근시간을 보내고 사우나로 직행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점심시간에는 으레 간단한 음주와 화투를 즐겼다. 오죽하면 특급 호텔 사우나에 화투를 칠 수 있는 방까지 만들어서 운영했을까! 한 달에 두 차례 쉬는 일요일에는 계곡에서 음주가무를 즐겼다. 닭백숙과 닭도리탕은 전국 유명산에 있는 유원지 단골 메뉴로 등극한다. 또 어김없이 화투를 친다. 이나마도 1990111일 유원지 취사를 금지하면서 사라진다.

 

숨통을 열어 준 중년의 레저도구는 텔레비전이다. 1956512일 텔레비전 방송국을 설립하고 111일부터 정규방송을 시작한다. 제대로 운영된다면 기적이다. 1957년 한국일보가 인수해서 대한방송주식회사로 다시 시작한다. 텔레비전 수상기 보급대수는 3천대. 19587천대로 늘기는 했지만 19611015일 또 다시 폐업한다.

 

1961년 정부가 나서서 한국방송공사 KBS를 시작한다. 텔레비전 수상기 2만대를 수입해서 월부로 판매한다. 시장이 작동한다. 1964127일 동양방송 TBS가 개국한다. 로터리 채널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중년 가장이었다. 198012월 컬러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한다. 흑백텔레비전은 자녀들 방으로 옮기고 컬러텔레비전을 산다. 화질이 정말 좋다는 아남 29인치 컬러텔레비전으로 바꾼데 이어서 화면이 그렇게 크다는 프로젝션 텔레비전으로 한 번 더 바꾼다.

1966년 7월 9일 첫 국산 텔레비전을 생산한다. 금성이 만든 진공관식 19인치 1호 제품이라는 뜻으로 VD-191이라고 이름불렀다. 2013년 국가등록문화재 제561-2호로 지정했다(ⓒ 문화재청).

텔레비전에 이어서 중년을 자극한 것은 VCR이다. 1979년 삼성전자에서 VCR을 생산하기 시작하지만 1983년까지 보급률은 1.5%에 그친다. 계기는 ‘88서울올림픽이다. 중계권료의 상당부분을 내는 미국 시청자를 위해 섬머타임을 실시하고 경기시간도 조정한다. 정작 우리나라 시청자들이 우리나라에서 열린 올림픽을 보기 힘들어진다. VCR을 구입한다. 예약녹화 기능을 이용해 녹화해 놨다가 퇴근 뒤 올림픽 경기를 본다. 영화를 보는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VCR 보급과 함께 동네 마다 비디오대여점이 문을 연다. 굳이 극장에 가지 않고도 영화를 볼 수 있게 된다. 올림픽이 끝난 1990VCR 보급률은 27.8%로 증가하고 2000년에는 78.6%로 높아진다. 읽는 레저도구에서 듣는 레저도구를 거쳐 마침내 동시에 보고 듣는 레저도구를 손에 넣는다.

1980년을 전후해서 우리나라 레저산업에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남자의 도구는 캠핑장비와 골프클럽으로 바뀐다. 1980 14만 달러에 불과하던 골프용품 수입액은 1981 312억 달러로 급증한데 이어서 1983년에는 2574억 달러로 폭증한다. 연평균 164.1%에 달하는 폭발적인 성장세다. 스키용품도 같은 기간 136억 달러, 310억 달러, 741억 달러를 각각 기록 연평균 79.7%씩 성장한다. 아웃도어 레저산업 전체적으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 것은 캠핑용품이다. 같은 기간에 연평균 147.9%씩 성장한다. 텐트를 제외 한 캠핑용품 성장세는 이 보다 더 큰 229.9%.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액수로는 1975 6백만 원에 불과하던 것이 1980 67 4700만 원, 1981년에는 171 5400만 원, 1982년에는 254 9100만 원어치 캠핑용품을 생산한다.

골프클럽은 수입하고, 캠핑용품은 생산한다. 중년은 수입한 골프클럽을 사고, 청년은 캠핑용품을 산다. 중년은 자가용을 타고 필드에서 골프클럽을 휘두른다. 자가용과 골프클럽은 성공과 출세를 자축하기에 제격이다. 청년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동해 바닷가로 간다. 텐트를 치고 통기타를 튕기면서 저항을 노래한다.

 

중년은 골프를 치려고 골프장으로 간다. 집이나 직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동수단이 필요하다. 골프클럽을 수입하는 만큼 자동차를 등록대수도 늘어난다. 197077일 경부고속도로를 준공했다. 1975년 현대자동차에서 포니를 생산한다. 승용차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남자가 골프를 치면서부터다. 1970년대 10년 동안 승용차 연평균 증가율은 9.3%였으나 1980년대에는 23.6%로 증가한다. 1975년 승용차 등록대수는 84212대였으나 1980년에는 3배가량 증가한 249102대로 늘어난다. 1985년에는 2배가량 증가해서 556699대가 되고, 1990년에는 2074922대로 늘어난다(박상준·김희경·주진호, 2012: 6). 한국남자는 승용차를 타고 골프를 친다. 골프클럽과 자가용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지위상징이다.

세계화 - 보고 듣고 느끼고

1993225일 제14대 김영삼 대통령이 이끄는 문민정부가 출범한다. 군내 사조직 척결,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등 많은 치적을 남긴다. 그러나 재벌기업의 무리한 해외 차입경영으로 이윤율이 떨어지면서 부채상환 디폴트 상황에 빠진다. IMF 경제위기다. 세계화와 사회적 국유화는 공존할 수 없었다.

 

경제위기는 소득과 소비 양 측면에서 양극화를 초래한다. 사회는 둘로 쪼개진다. 고급소비시장에서는 명품소비가 이루어진다. 대중소비시장에서 아웃도어 열풍이 분다. 경제위기와 함께 등산이 아웃도어 레저활동 1위를 차지한다. 2008년부터는 걷기가 줄곧 1위를 차지한다. 2010년에는 자전거가 처음으로 5위에 진입한다.

아웃도어 레저활동 참여도 (문화체육관광부. 2016. ≪2016 체육백서≫)

이에 따라 아웃도어 레저산업이 변동을 거듭하고 있다. 삼성패션연구소에 따르면, 2011년 전 세계 2위 시장으로 성장한 한국 아웃도어 레저시장 규모는 2014 7조원을 기록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2017년 시장규모는 4 5천억 원으로 연이어 감소하고 있다. 쇠퇴기에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의외의 결과는 골프산업에서 나오고 있다. 2017년 골프장 이용객 수가 3542만 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골프인구는 377만 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한 2015399만 명보다 22만 명 줄었다. 하지만 골프인구 1인당 골프당 이용횟수가 20158.5회에서 20179.4회로 늘었기 때문에 이용객 숫자가 증가한 것이다. 퍼블릭 골프장이 증가숫자가 회원제 골프장 감소숫자보다 더 많고, 스크린골프 이용객들이 필드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한국레저산업연구소, 레저백서 2018).

 

여가활동이 변하면 여가장비도 변한다. 북미나 서구유럽 선진국들은 골프에서 요트와 승마로 레저인구가 이동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이동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골프가 증가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5~60대 남성들이 대거 골프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 레저활동은 어떻게 바뀔까? 활동변화는 어떤 새로운 레저도구를 도입할까?

가장 큰 변화는 정보통신기술과 결합한 디지털화다. 2000년 처음으로 통계청 사회조사 문화여가 항목에 포함된 컴퓨터 게임 및 인터넷 검색은 줄곧 10%대를 머물다가 201731.3%로 껑충 뛴다. 대단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변동이다. 텔레비전 시청도 75.2%로 조사를 시작한 1990년 이래 처음으로 70%대를 돌파했다. 언뜻 보면 비율만 증가한 듯하다. 그렇지 않다.

2008IPTV를 도입하고 2010년 아날로그 방송을 중단했다. 2017IPTV 가입자는 케이블 텔레비전 가입자를 앞질렀다. IPTV, 즉 스마트TV는 이전의 레저도구와 완전히 다르다. 디지털이다. 스마트폰으로 시청하면 모바일이 된다. 앞으로 레저활동은 모바일 인터넷에 연결된 미디어를 통해서 이루어 질 것이다. 여기에 VR이 결합하면 다시 한 번 도약한다. 듣는 레저도구에서 보고 듣는 레저도구를 거쳐 보고 듣고 느끼는 레저도구로 전환한다.

Jacob Poushter, Caldwell Bishop and Hanyu Chwe. 2018. "Social Media Use Continues to Rise in Developing Countries but Plateaus Across Developed Ones - Digital divides remain, both within and across countries". Pew Research Center.

레저도구 사용법

한국 남자가 신문을 손에 들었을 때 계몽과 독립을 위한 투쟁은 정점을 향해 달린다. 라디오·텔레비전·VCR 등 아날로그 레저도구를 섭렵하는 동안 우리사회는 전통에서 근대로 전환을 완성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근대화를 달성한 한국 남자는 승용차를 타고 골프 치러 간다. 자가용과 골프는 성공과 출세의 지위상징이다. 스키·등산·걷기·자전거 등 아웃도어 열풍은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경제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한국 남자는 어느새 스마트TV·스마트폰·VR 등 레저도구를 손에 쥐고 있다. 신경제 정보통신기술로 미래 한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모바일과 디지털이 결합된 새로운 세계에서 한국 남자가 일어서고 있다.

참고문헌

국토교통부. 각년도. 건설교통통계연보

남은영. 2011. 한국사회의 변동과 중산층의 소비문화나남.

문화체육관광부. 각년도. 체육백서

박상준·김희경·주진호. 2012. 자동차 보유대수 장기 전망에 관한 연구한국교통연구원.

신명직. 2003. 경성을 거닐다현실문화연구.

최병택·예지숙. 2009. 경성리포트시공사.

최석호. 2006. 한국사회와 한국여가 근대적 대중여가의 형성과 문명화한국학술정보.

통계청. 각년도. 사회조사보고서 복지 사회참여 문화와 여가 소득과 소비 노동

한국레저산업연구소. 2018. 레저백서 2018

한국산업경제연구원. 1985. 국민여가생활의 실태분석과 대책한국관광공사.

황기원. 2009. 한국 행락문화의 변천과정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여가연구 (Leisure Stud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골목길 걷기여행  (0) 2021.02.24
술 마시는 남자, 수다 떠는 여자  (0) 2021.02.20
베스트셀러의 자화상  (0) 2021.02.10
일과 여가  (0) 2021.02.08
2020년 한국레저산업  (0) 2021.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