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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연구 (Leisure Studies)

가족여가

최석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

 

5일 근무제

프랑스의 여가학자 Dumazedier는 가족여가를 반여가(semi-leisure)라고 불렀다. 책임이 과도하게 부여되어 있어서 그 자체로는 여가로 성립될 수 없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모순적이게도 사람들은 가족여가를 선호한다. 그래서 미국의 여가학자 Kelly는 가족여가를 강제적이지만 사람들이 선호하고, 가장 자유롭지 못하지만 사람들이 아주 소중하게 여긴다라고 했다.

출처 : 최석호. 《시간편집자》 MBC C&I.

5일 근무제 도입에 따른 여가활동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5일제 실시 이후 누구와 함께 여가를 보내고 있는지 또는 보낼 계획인지를 묻는 문항에 대해서 가족과 함께 보내겠다는 사람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했다(전체의 80.7%). 당연한 결과로, ‘건전한 여가를 보내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여가프로그램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47.5%가 가족여가프로그램이라고 응답했다. 그 뒤를 이어서 문화예술프로그램(16.9%), 생활체육프로그램(11.8%), 자기계발프로그램(11.5%) 등이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가족여가프로그램이라는 응답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응답률을 보였다.

회사원-가정주부-학생-학생-강아지

이상과 같은 조사결과는 이혼율 증가로 말미암아 한국가족이 위기를 맞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독일에서 주3.5일 근무제(28.8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면서 이혼율이 급증하는 사례가 나타나서 가족해체가 사회문제로 대두한 적이 있다. 볼프스부르크의 사례인데, 폭스바겐 자동자공장이 있는 이 도시는 지난 1994년에 노사 양측의 합의로 임금을 20% 삭감하는 대신 주3.5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이 조치로 3만 명 노동자 일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으며, 기업은 생산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3.5일 근무제를 도입한 2년 뒤에 이혼율이 약 60% 증가한 것이다.

 

폭스바겐 자동차와 볼프스부르크시 폭스바겐 자동차 공장

볼프스부르크시의 이혼율 급증 사례는 여가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보다 많은 여가는 가족해체를 촉진하는 것일까?’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문제는 가부장적이고 불평등한 가족관계였다.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잠재되어 있던 갈등이 현재화되었기 때문이었다. , 가부장적 가족관계를 평등한 관계로 전환하지 않은 채로 경제논리에 따라 주어진 가족여가는 통합이 아니라 해체를 초래하는 재앙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볼프스부르크시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도 주5일 근무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중이어서 해를 거듭할수록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가부장적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불평등한 가족관계는 우리의 가족구성에서도 잘 나타난다. 우리의 가족은 아버지-어머니-아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회사원-가정주부-학생-학생-강아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구성이 '회사원-가정주부-학생-학생-강아지'라면 가족여가를 함께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가족 구성이 '어머니-아버지-딸-아들'이라면 즐거운 여가활동이나 재밌는 여가활동을 함께 하자!

부부여가

라이스만과 베르겐(Reissman & Bergen, 1993)은 흥미진진한 실험을 했다. 모두 53쌍의 부부를 세 집단으로 나누어서 매주 1시간 30분 씩 10주 동안 여가활동을 같이 하도록 했다. 첫 번째 집단의 부부들은 콘서트, 연극, 강연, 스키, 하이킹, 댄스 등 재밌는 활동(exciting activities) 선택해서 같이 했다. 두 번째 집단은 친구만나기, 영화, 교회, 외식 등 흥분되지는 않지만 즐거운 활동(pleasant activities)을 같이 했다. 세 번째 집단은 그냥 시간을 같이 보냈습니다. 10주 후에 53쌍 부부들의 결혼만족도를 측정했다.

 

재밌는 활동을 매주 1시간 30분씩 10주 동안 같이 한 부부들만 결혼만족도가 높아졌다. 라이스만과 베르겐의 결론은 여가활동을 같이하거나 단순히 부부가 같이 있는 것만으로는 부부생활에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족여가활동

라이스만과 베르겐의 실험과 볼프스부르크 시의 사례에서 한 가지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가족여가에서 중요한 것은 여가가 아니라 가족이다. 가족관계가 좋으면 즐거운 여가활동을 같이 하면 할 수록 더 행복해 지지만, 가족관계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여가활동을 같이 하면 갈등이 증폭되어서 가족이 해체될 수도 있다.

 

평등한 가족관계를 바탕으로 가족들이 보다 많은 여가시간을 가진다면, 여가전문가로서 가족여가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여가활동에 대해서 조언해 줄 것이 많다. 그러나 여전히 가부장적인 가족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보다 많은 가족여가를 원한다면 조언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여가보다 평등한 가족관계를 바탕으로 한 가족간 소통이 더 중요하다. 가족구성을 '회사원-가정주부-학생-학생-강아지'에서 '아버지-어머지-아들-딸'로 바꿔야 한다. 다음 단계는 여가활동이다. 단순히 같이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몰입할 수 있는 재밌는 여가활동을 함께 하시라. 가족만족과 부부만족 분명히 증가한다. 한 가지 유념하자! 여가학자들이 추천한 여가활동에 텔레비전시청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