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술기행

<몽유도원도>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장식한 인면조(人面鳥)는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았다. 인면조는 고구려 고분벽화, 백제 금동대향로, 신라 식리(장식신발) 등에 두루 등장한다. 개막식에서는 덕흥리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인면조 만세지상(萬歲之像)을 모티브로 했다. 영원한 삶을 상징하는 신선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는 땅에서 하늘에 이르는 세부분으로 나뉜다. 벽면 벽화는 땅에서 인간으로 사는 동안 삶을 그리고 있다. 천정 벽화는 사후세계에서 신선으로 사는 삶을 그리고 있다. 두 세계를 달리 보지 않았던 우리민족의 도교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땅에서 인간으로 살든 아니면 하늘에서 신선으로 살든 삶은 연속적이다. 삶은 죽음보다 강하다. 하루빨리 신선이 되고 싶고 속히 신선세계로 들어가고 싶다. 신선세계 동천복지를 꿈꾸면서 사후세계는 오늘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온다. 별서(別墅).

 

광개토대왕 18년 408년에 축조한 덕흥리 고분 앞방 남쪽 천장 그림.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와 직녀가 아쉬운 이별을 하고 있다. 그사이 아래에 인면조를 그렸다. 무덤주인 유주자사 진이 은하수를 건너 부인과 이별한다. 아쉬운듯 손을 흔든다 (박대남 외. 2018. 《북한고구려고분벽화모사도》 국립문화재연구소. 233쪽) .

정묘년(丁卯年 1447) 420일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은 깊은 잠에 들어 꿈을 꾼다. “박팽년(朴彭年, 1417-1456)과 함께 복숭아 꽃나무 수십 그루 있는 어느 산골에 이르렀다. 숲속 갈림길에 이르렀을 때 어떤 사람이 북쪽으로 가면 도원이라 일러준다. 북쪽 골짜기 안에 들어서니 사방으로 산이 벽처럼 둘러싸고 넓게 트였다. 대숲에 초가집이 있다. 궁벽한 골짜기와 깎아지른 절벽은 마치 신선이 사는 곳 같다. 같이 모여 시를 짓던 최항(崔恒, 1409-1474)과 신숙주(申叔舟, 1417-1475)가 뒤따라온다.”

 

안견(安堅)에게 꿈을 이야기하고 그림을 그리라 이른다. 사흘 만에 완성한다. 夢遊桃源圖. 험한 진입로, 깊은 산 속 넓은 평야, 깨끗하고 작은 초가, 꽃 핀 복숭아나무 ····. 궁벽한 골짜기와 깎아지른 절벽에서 세상을 피한다. 고요함 속에 그윽함을 즐긴다. 동천복지다.

 

<몽유도원도>

안평대군의 형 수양대군은 1454년 계유정난을 일으킨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던 동생 안평대군을 역적으로 몰아 강화 교동도로 유배 보내 죽인다. 조카 단종을 영월로 유배 보냈다가 사약을 내려 제거한다.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무릉도원에 같이 간 사람이 있다. 박팽년이다. 무릉도원에 도착하니 어느새 최항과 신숙주도 뒤따른다. 박팽년은 처음부터 안평대군과 동행하고 최항과 신숙주는 뒤늦게 따라온다.

 

안평대군과 함께 무릉도원에 들었던 박팽년은 안평대군과 함께 이 세상을 하직한다. 안평대군을 멀찍이 따랐던 최항과 신숙주는 대군을 배신하고 정난공신으로 호의호식한다. 안평대군의 꿈은 <몽유도원도>가 되었고,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 <몽유도원도기>는 현실 역사가 되었다. 꿈은 현실이 되고, 현실은 역사가 된다.

안평대군은 꿈에 본 복숭아나무 꽃동산을 부암동 인왕산 북벽 기슭에서 발견한다. 동천복지에서 소요하는 신선 같은 삶을 꿈꾸면서 별서를 짓는다. 무계정사(武溪精舍), 무릉도원 계곡(武溪)에서 정신을 수양하고자 한 것이다(精舍).

 

무계동 무계정사

우리 조상들은 땅에 살면서 신선세계를 동경하고, 사람으로 살면서 신선이 되기를 꿈꾸었다. 비록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은 살기 좋은 세상이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신선세계를 보았다. 폐막식을 기대한다.

 

최석호. 2018. "인면조와 신선세계". <헤럴드경제> 2월 21일자

'예술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고기 두 마리  (0) 2021.04.21
<연평초령의모도>  (0) 2021.03.23
아름다운 사람, 우현 고유섭  (0) 2021.02.27
고려청자  (0) 2021.02.23
녹차 담은 청자  (0) 2021.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