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구락부

북리뷰《허황옥 루트》

김병모. 2018. 《허황옥 루트》 고려문화재연구원.

고고인류학자 김병모 교수는 김해 김수로왕릉에 등장하는 신어의 기원을 추적하면서 아시리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2700년경 아시리아에서 인도 갠지스강 중류 지방 아요디아를 거쳐 중국 사천성 보주에서 가야 김해에 이른 것이다. 그 연원에서부터 가야까지, 가야에서 다시 왜 구마모토로 전해 준 신어이야기를 시작한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도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이어진 쌍어사상 루트를 김병모 교수는 허황옥 루트라 부른다 (김병모, 2006b: 176)

아시리아 신어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메소포타미아 미술품 전시실에는 원통형 인장과 그 인장을 찍은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아시리아 쌍어를 새긴 인장에는 신어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산양들로부터 신수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적회색 벽옥에 새긴 인장은 기원전 13세기 아시리아 중기 제품이다.

 

기원전 13세기 아시리아 인장에 새긴 쌍어(김병모, 2006b: 143)

페르가몬박물관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수메르문명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에는 높이가 사람 키 만한 큰 물통(水槽)을 전시하고 있다. 아시리아 센나케리브왕(재위 기원전 705~681) 대 만든 것이다. 아수르 신을 모시는 사원 중정(中庭)에서 발견했다. 물이 넘쳐 흐르는 물병을 든 수신(水神) 양 옆에 물고기 껍질 모양 옷을 입은 사제가 서 있다. 쌍어를 조각한 것이다. 결국 신어사상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생겨나서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한국까지 들어온 셈이다(김병모, 2018: 212~219).

 

기원전 7세기 아시리아 사원 중정에서 발굴한 대형 수조 외벽 쌍어(김병모, 2006b: 143)

코살국 아요디아 신어

아유타는 인도 우타르 프라데쉬주 수도 러크나우시 인근에 있는 옛도시 아요디아(Ayodha)를 말한다. 힌두교 중흥 시조 라마가 태어난 곳이다. 힌두교도들은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갠지스강 중류에 걸쳐 있는 땅이다. 기원전 7세기 아리아족이 히말라야 산맥 남쪽을 모두 지배했는데, 이때 생겨난 갠지스강 중류 코살라에 있었던 코살국에 아요디아가 자리하고 있다. 불교를 개창한 싯다르타가 살아있었던 기원전 540~480년 어간에 아요디아는 코살국 중심도시로 성장한다.

 

코살국 람왕은 갠지스강에 큰 홍수가 났을 때 70대 선조 마누를 구해 준 물고기를 신어(神魚, 물고기 토템)로 삼았다. 코살국 수도 아요디아에서는 신어를 쌍어로 표현한다. 이 신어를 마찌라고 한다. 신어는 주신을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신어는 왕을 수호하는 신이다(김병모, 2006b: 136~140).

 

기원전 3세기 마우리아왕조 아쇼카왕 시절에 아요디아를 포함한 갠지스강 주변 도시들은 모두 불교도시가 된다. 중국은 기원전 210년 진나라 시황제가 죽고 기원전 202년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하는 혼란을 겪는다. 그 틈을 노린 흉노 묵돌선우는 기원전 203년 한고조 유방 32만 대군을 백등산에서 괴멸시킨다(班固, 2020a: 429~431). 이어서 월지(月氏)를 공격한다.

 

월지는 할 수 없이 감숙(甘肅)을 떠나 서역으로 향한다. 이식에서 오손에게 패하고 또다시 서쪽으로 도망쳐 사르다리아강에 이른다. 월지는 그곳에 살고 있는 스키타이인 사카족을 공격한다. 스키타이는 박트리아 지방으로 도망친다. 기원전 1세기 월지는 박트리아로 들어가 스키타이를 몰아낸다. 인도로 눈을 돌려 인더스강 북안과 갠지스강 일대를 장악하고 쿠샨왕조를 건국한다(김종래, 2002: 127~135). 쿠샨왕조가 갠지스를 지배한 뒤 3대 카이슈카왕은 아요디아에 지사를 파견하여 위임통치한다.

 

아요디아 힌두교사원 대문 쌍어(김병모, 2006b: 174)

힌두교 영웅담 <라마야나라마 이야기>에 따르면, 인간의 조상 마누는 10명의 아들 중 맏아들 익스바쿠에게 아요디아를 영지로 물려준다. 아요디아에서 태어난 마누의 16대손 라마는 영토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라마가 탄생한 지역이 아요디아다. 인구 10만 가량 되는 작은 도시 아요디아에는 100개가 넘는 힌두교 사원이 있다. 사원에는 빠짐없이 쌍어문을 조각하거나 그렸다. 집집마다 대문에 쌍어문을 붙였다.

 

16세기 이슬람 무굴제국이 아요디아를 점령한다. 아요디아에 있는 라마 탄생지에 이슬람사원 바브라를 세운다. 그러나 힌두교도들이 먼저 라마 탄생 기념사원을 세웠다. 그래서 이슬람 보다 먼저 힌두교성지였다. 힌두교사원 카탁바바나사원은 라마가 사랑한 왕비 시타를 모시고 있다. 시타의 침소 벽면에도 쌍어문을 그렸다.

 

400년 뒤 이슬람 세력은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으로 가서 각각 독립국가를 세웠다. 그런데 일부는 아요디아에 남아서 이슬람 사원 바브라를 지킨다.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 사이에서 아요디아에 있는 사원을 두고 싸움이 격화되었다. 1992년 힌두교도가 바브라를 파괴했다. 유혈분쟁으로 이어져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한다(조길태, 2000: 572~577). 지금은 유혈분쟁을 막기 위해 폐쇄했다. 현재 이슬람교도 몇 사람이 바브라사원 안에서 사원을 지키고 있다. 무장 군인들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한다.

중국 보주 신어

월지국 쿠샨왕조가 갠지스강 중류 일대를 지배하고 아요디아에 지사를 파견하여 다스린다. 아요디아 사제계급과 왕족들은 배를 타고 갠지스강을 떠난다(김병모, 2018: 146~148).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동북쪽 바오산(保山)을 넘어 윈난(雲南) 대리(大理)에 이른다. 이때 허황옥의 선조들은 보주(普州)에 자리 잡는다. 보주(안악) 허씨 집성촌(瑞雲鄕) 뒷산 암벽에 새긴 신정기(神井記)에는 허황옥이라는 소녀가 있어 용모가 수려하고 지략이 뛰어났다”(許女黃玉姿容秀麗智勇)고 새겼다.

 

중국 사천성 안악(옛 보주) 서운향 허씨 집성촌 사당 쌍어

기원후 47년 후한은 식민지 남군(南郡)을 세우고 과도한 세금을 부과한다. 아요디아에서 이주해 온 허씨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결국 후한 관군에게 패하고 무한(武漢)으로 또 다시 강제 이주한다. 이듬해 48년 허황옥은 가야로 망명한다(김병모, 2006b: 163~166).

 

중국 안악(보주) 허씨 마을 신정기(김병모, 2006b: 128~129)

가야 쌍어

김해 김수로 왕릉(納陵) 대문 문설주 위에 두 마리 물고기를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조각했다. 수로왕릉 가까이에 왕비릉이 있다. 능비에는 駕洛國 首露王妃 普州太后 許氏陵라고 새겼다. 왕비릉 옆 파사석탑은 형태가 일그러진 채로 서 있다.

 

가락국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저는 아유타국 공주입니다. 성은 허이고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16세입니다”(妾是阿踰陀國公主也 姓許名黃玉年二八矣). 가락국 김수로왕은 天竺國(천축국)에서 온 허황옥과 727일 결혼한다. 이 때 의 문물제도를 본 따서 직제를 개편했다. 결혼한 날에 백성들은 말타기경주와 배젓기경주를 한다. 배젓기경주를 하면서 허황옥이 배를 타고 도착한 것을 재현한다. 말타기경주를 하면서 허황옥이 도착했다는 것을 말 탄 사람이 급히 전한 것을 기념한다.

 

납릉(김수로왕릉) 문설주에 그린 쌍어(© 이명진 교수)

김해 신어산 은하사 대웅전 수미단에 쌍어 24마리를 조각했다. 쌍어는 연꽃을 지키고 있다. 신어산 은하사 중수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天竺國에서 온 가락국 왕비 허황옥의 오라버니 長遊和尙西林寺(은하사의 옛이름)”. 쌍어는 옛 가야 지역에서 나온다.

백제 쌍어 신라 단어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그릇 밑바닥 쌍어 그림은 예외에 해당한다. 백제 지역인 충남 공주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무령왕이 일본에서 태어났던 때에 이미 가야 이주민들이 외에 쌍어신앙이 퍼뜨린 듯하다. 가야 쌍어(雙魚)와 달리 신라는 단어(單魚). 적석목곽묘에서 출토된 금은제허리띠에 물고기 한 마리가 있다. 주둥이를 위로 향한 채 달려있다.

 

경주 황남대총 북분 출토 금제드리개. 단어가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야마타이국 신어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사이에 일본은 100여개 작은 나라들로 나뉘어져 있었다. 기원후 2세기 후반에 큰 분쟁이 일어나 작은 나라들을 병합한다. 3세기에 이르러 30여개 나라 왕들이 공동으로 야마타이국 히미코(邪馬臺國 卑彌呼)를 추대하여 여러 나라를 다스리게 한다. 히미코는 주술을 통해 신의 소리를 듣는 무녀다. 남동생에게 정치를 맡기고, 중국에 조공했다(한국역사교과서연구회·일본역교육연구회 공저, 2007: 33).

 

김수로왕의 딸 신녀공주와 선견왕자는 가락국 유민들을 이끌고 쿠슈 지방 후쿠오카 현 구마모토 시(九州地方 福岡縣 熊本市)로 건너가서 세운 나라가 야마타이국이다. 가야 사람들은 유우메이 해안 야쓰시로 마우야마(丸山) 언덕 위에 후루우모도 이나리 신사(古麓稻荷神社)를 짓고 쌍어신앙을 이어간다. 이즈음 히미코 여왕이 바로 신녀공주다.

 

구마모토 후루오모토 이나리신사 신어(김병모, 2006b: 181)

三國志(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나오는 54개국 중에서 卑彌國(비미국) 국호를 일본어로 읽으면 히미가 된다. 삼한 54개국 중 한 나라 이름과 왜나라 야마타이국 통치자 이름이 똑 같다. 신어사상을 가진 히미코가 왜국으로 이민 간 것이다. 여러 나라가 서로 싸워 혼란한 왜에 쌍어신앙으로 야마타이국을 통치하여 안정시킨다(김병모, 2018: 253~276).

비판적 책읽기

이 책이 지니는 가치를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지나치지 않는다. 평생을 바쳐 신어사상을 추적한 김병모 교수의 학문적 성과를 제대로 표현할 말을 찾기도 어렵다. 특히 중국 보주(普州)에서 가야 김해로 이어지는 허황옥 루트를 찾아낸 것은 놀라움 그 자체다. 일연이 우리 역사서를 정리하면서 다시 쓴 삼국유사가락국기에 姓許名黃玉을 중국 사천성 안악(보주의 현재 지명) 서운향 우물 옆 바위에 새긴 許女黃玉에서 확인함으로써 역사적 실증까지 완료한 셈이다.

 

김병모는 말하지 않고 있지만, 김병모보다 먼저 이 모든 것을 밝혀낸 분이 있다. 아동문학가 이종기다. 이종기는 쌍어문, 아요디아, 히미꼬, 이나리신사 등 거의 모든 것을 지난 1970년대에 다 밝혔다. 발로 뛰어서 밝혀낸 연구성과를 신문에 연재하고, 우리나라(이종기, 1977)와 일본(이종기, 1976)에서 출판하기도 했다. 물론 일본에서는 만 부를 찍어서 서점에 배포했다가 석연찮은 이유로 전량 회수하는 소동을 겪었다(이종기, 1977: 32~34).

 

허황옥 루트를 처음 밝힌 연구자는 아동문학가 이종기다. 이종기는 1977년 《가락국탐사》를 출간하여 연구를 책으로 펴냈다. 2006년에 나온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는 이종기 사후에 유고를 출간한 저서.

그러나 보주가 어디에 있는지는 끝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Arnold Toynbee가 쓴 역사연구(A Study of History) 별책부록에 실린 1세기 세계교류도와 프랑스 동양학자 Boulnois가 쓴 실크로드(La Route de la Soie)를 근거로 한나라가 차지하지 못한 대만해협 복주(福州) 민예국(민예국)에서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가야로 왔을 것이라고만 했다(이종기, 1997: 306~313). 김병모는 분명히 이종기의 연구를 참고했을 터인데 이종기에 대해서 전혀 말하지 않는다.

 

또한 일부 연대가 맞지 않는다. 김병모 교수는 쿠샨왕조가 기원전 70년 인도 서북쪽에서 침입하였으므로 코살라국 왕족들은 동남쪽으로 피난하였다고 주장한다(김병모, 2018: 148, 239). 미얀마를 거쳐 중국 보주에 정착한다. 허황옥은 32년 보주에서 태어난다. 무거운 세금 때문에 47년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무한으로 쫓겨난다(김병모, 2018: 238~240). 이듬해 48년 허황옥은 가야로 와서 김수로왕과 결혼했다.

 

이종기 선생이 그린 꽃가마 타고 가야로 가는 허황옥

대월지국이 흉노 노상선우에게 땅을 빼앗기고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대월지국을 다시 세운 것은 기원전 2세기다. 작은 나라들을 통합해서 쿠샨왕조를 수립하고 인도 서북지방과 갠지스강 중류를 차지한 것은 제3대 카니슈카왕이 다스리던 때다. 카니슈카왕 재위 기간을 두고 하계는 두 가지로 설이 나뉜다. 하나는 143~152년으로 잡고, 다른 하나는 78년으로 추정한다. 두 가지 학설 중 어느 것도 코살라국 왕족들이 쿠샨왕조를 피해 달아난 때와 다르다.

 

김병모 교수 주장대로라면 쿠샨왕조는 기원전 70년에 갠지스강 중류 지방을 차지해야 한다. 인도사를 전공한 조길태 교수는 쿠샨왕조 수립을 기원후 40년경으로 잡는다. 3대 카니슈카왕은 갠지스강 유역으로 통치권을 확대하고 아요디아를 차지한다. 왕이 다스린 때는 기원후 78년 또는 120년에서 144년이다(조길태, 2000: 121~124). 김병모 교수가 주장하는 때와는 최소한 148년 시차가 있다.

 

김병모 교수는 김수로왕의 딸 신녀공주가 야마타이국을 다스린 히미꼬라고 추정한다(김병모, 2018: 271~276). 만약 그렇다면, 히미꼬가 야마타이국을 다스린 연대가 1세기이어야만 한다. 김수로왕과 허황옥이 결혼한 때가 48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히미꼬가 다스린 때는 3세기다(한국역사교과서연구회·일본역교육연구회. 2007: 33). 시차는 더욱 벌어진다.

 

하나 더 사족을 달아보자. 아유타, 즉 아요디아를 영문으로 표기할 때 Ayodhya라고 적는다(조길태, 2000: 78). 구글 세계지도를 검색해도 Ayodhya라고 표기하고 있다. 김병모 교수는 Ayodhia라고 적었다(김병모, 2018: 44).

 

구글로 검색한 Ayodhya

참고문헌

김병모. 2006a.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 1고래실.

김병모. 2006b.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 2고래실.

김병모. 2018. 허황옥 루트고려문화재연구소.

김종래. 2002. 유목민 이야기자우출판.

이종기. 1996. 卑彌呼 渡來二見書房.

이종기. 1977. 가락국 탐사일지사.

이종기. 1997. 춤추는 신녀 - 일본의 첫왕은 한국인이었다동아일보사.

一然. 2012.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신태영 역.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조길태. 2000. 인도사민음사.

한국역사교과서연구회·일본역교육연구회. 2007. 한일교류의 역사 선사부터 현대까지혜안.

班固. 2020a. 漢書 列傳 5이한우 역. 21세기북스.

班固. 2020b. 漢書 列傳 6이한우 역. 21세기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