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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비와 당신의 이야기>

비의 날에 개봉한 당신의 이야기

실패한 사람에게 잘 했다고 한 마디 해 준 사람. 넘어져서 다친 사람에게 손수건 한 장 건네준 사람. 그 사람을 오래 기다리는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포스터 <비와 당신의 이야기>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비의 날 수요일에 개봉했다. 428일 개봉일부터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개봉 5일째인 52일 일요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매출액기준이나 관객기준 모두 1, 누적매출액은 156900만원, 누적관람객은 174724. 코로나 상황을 고려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5월 2일(일) 좌석점유율

오랜 기다림

영호는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에서 넘어진다. 그 때 손수건 한 장을 건네준다. 체육복에 공소연이라는 이름이 선명하다. 어느 듯 삼수생이 된 영호는 공부를 포기한다. 아버지 가죽공방에서 자라서 일까?! 우산공방을 연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한 것이다.

소연은 병원에 누워있다. 말을 하지 못한다. 목 이하는 손가락만 쓸 수 있다. 눈을 깜박이거나 손가락으로 종을 쳐서 동생 소희와 소통한다. 영호는 어렵게 알아낸 주소로 소연에게 편지를 보낸다. 소희는 언니 소연에게 온 영호의 편지를 읽어준다. 소연은 영호를 기억하지 못한다.

질문하지 않기. 만나자고하지 않기. 그리고 찾아오지 않기를 규칙으로 소희는 언니대신 답장을 쓰기 시작한다. 여러 차례 편지가 오간다. 영호는 소희 어머니가 경영하는 부산 헌책방에 들린다. 소희도 영호 아버지가 경영하는 서울 가죽공방에 몰래 들린다.

엄마가 경영하는 헌책방에서 일하고 있는 소희

올해 말일에 만날 수 있을까? 우리 초등학교 앞 어떨까?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냥 그날 비가 오면 만나기로 하자. 더는 묻지 말고 그러기로 해. 부탁이야.” 영호는 그때부터 매년 연말이면 비가 오든 오지 않든 옛날 초등학교 자리에 들어선 공원에서 기다린다.

그날 운동회 때 소희는 언니 소연의 체육복을 입고 갔다. 손수건을 건네 준 사람은 소연이 아니라 소희다. 그래서 소연은 영호를 기억하지 못한다. 소희는 영호를 안다. 영호도 소희를 안다. 다만 소연이라고 잘못 알고 있을 뿐이다.

영호를 짝사랑하는 재수학원 친구는 나는 그 아이와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 하룻밤을 같이 하고도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영호에 대한 원망 섞인 질문이다. “너는 별 같이 빛나. 그 아이는 비 같이 위안이 돼.” 영호는 빛나는 별을 기다리지 않는다. 위안이 되는 비를 기다린다.

초등학교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공워에서 소연을 기다리는 영호. 연에게 주기 위해 만든 우산과 소연이 영호에게 준 손수건도 공원벤취에 함께 있다.

비와 나의 이야기

20111231일 비가 쏟아진다. 소연에게 주기 위해 만든 우산과 초등학교 운동회 때 소연이 건네준 손수건을 들고 올해도 기다린다. 무심히 길거리를 지나는 자동차 한 대가 커브를 그리며 달려온다. 빛나는 별 같은 사람보다 따뜻한 위안이 되는 비 같은 사람을 기다리는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나는 부산 영주동 산동네를 무수하게 걸었다. 동인천도 무수하게 걸었다. 그렇게 쓴 책이 골목길 역사산책개항도시편이다. 부산 산동네 우체국 장면과 동인천 커피숍 앞 개항로 장면은 나에게 그 자체로 감동이다.

잔잔한 영화 그러나 여운이 길게 남는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감정을 절제하는 영화 그러나 흐를 듯 말 듯 눈가를 적시는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한국형 작은 영화

자유의 여신이 들고 있는 횃불에서 빛이 비친다. 눈부시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일본 가전사 소니가 미국영화사 콜롬비아 픽처스를 사들였다. 한국감독과 한국배우가 한국말로 만든 한국영화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자본으로 제작한 일본영화다. 느낄 듯 말 듯 알 듯 말 듯 ·····. 일본 감성으로 충만하다. 잔잔하다.

그래서일까! 일본영화가 직면한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다. 이렇게 작은 영화를 굳이 영화관에서 봐야하는 이유는? 텔레비전으로 봐도 감동의 깊이나 크기에 변함없을 것 같은데! 극장의 대형화면과 사운드의 힘을 살리지 못했다.

2013년 5월2일부터 5월30일까지 개최되었던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장국영추모 10주기 특별전시회를 위해 리미티드 100부를 제작해 전시/판매한 일러스트레이션. 장국영이 사비에르 쿠가트가 연주하는  ‘ 마리아 엘레나 ’ 에 맞춰 맘보춤을 추는 장면이다.

<아비정전>을 본 뒤에는 사비에르 쿠가트가 연주하는 마리아 엘레나에 맞춰 장국영이 맘보춤을 추는 장면이 계속 떠오른다. <첨밀밀>을 보고 난 뒤에는 등려군이 계속 노래를 부르는 것만 같다. <러브레터>를 보고 난 뒤에는 눈이 조금만 와도 오겡끼데스까를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보고 난 뒤 아무런 노래도 기억나지 않는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맞선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있는데 왜 한국형 작은 영화는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