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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연구 (Leisure Studies)

슈퍼맨의 주말가족여가

최석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 레저경영연구원 원장

한국일보 칼럼 2007. 11. 14()

 

이제는 가족이 되자

 

5일 근무제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가족은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다. 매 주 이틀간의 규칙적이고 연속적인 휴일을 갖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함께 하는 주말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주5일 근무제는 분명히 기회다. 그러나 가족해체의 위험도 동시에 증가하고 있어서 위기이기도 하다. 평등하고 호혜적인 가족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들이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 잠재되어 있던 가족갈등이 폭발하여 가족해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기의 이유는 주5일 근무제로 늘어난 가족여가시간이 아니라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불평등한 가족관계다.

5일 근무제 시행 이전에 평등한 가족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선행되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사정합의에만 급급했었다. 하루 빨리 가부장적 가족관계를 청산하고 평등한 가족관계를 형성해야 하겠다.

 

아버지, 슈퍼맨이 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5일 근무제를 시행했기 때문에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여가시간이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여가문화학회와 MBC가 공동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5일 근무제 시행 이후에 더 오랜 시간동안, 더 강도 높게, 그리고 더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다’. 5일 근무제는 노동시간을 늘리고 노동강도를 더 높인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들에게 주5일 근무제는 직장에서 슈퍼맨이 되라는 압력이다.

 

다만 주 이틀 동안의 규칙적이고 연속적인 휴일이 보장된다. 이틀 동안의 주휴일에 누구와 함께 여가활동을 하는지 그리고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가족과 함께라는 응답이 제일 많았다. 또한 전체 응답자 중 약 절반가량(47.5%)가족여가프로그램의 확충을 원했다. 직장에서 슈퍼맨으로 보낸 5일에 이어서 가정에서도 슈퍼맨으로서 2일을 보내겠다는 말이다. 일에 치이고 여가에 휘둘리게 될지 아니면 일과 삶을 조화시킬지 두고 볼 일이다.

 

내무반장형 슈퍼맨

 

슈퍼맨에게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180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쁜 짓을 저지르는 악당과 마주치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날아서 응징한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만 서면 세상에서 제일 부드러운 사람이 된다.

문제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우리 아버지들이 어디에서 하늘을 날아야 하는지, 어느 순간에 부드러워져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다. 전쟁터와도 같은 직장에서는 하염없이 인내하고 그지없이 기다린다. 집에만 오면 내무반장이 된다. 슈퍼맨은 슈퍼맨인데 응징해야 할 악당과 사랑해야 할 가족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내무반장형 슈퍼맨이다.

 

내무반장 슈퍼맨은 아내가 하는 말과 자녀들이 하는 말에 정오판단을 한다. 성공적으로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는 지시 또는 조언을 한다. 그러나 아내와 자녀는 남편과 아버지에게 지혜를 얻고자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편이 되어달라는 것뿐이다.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손가락질 할 때에도 세상을 등지고 나와 같이 손잡고 가는 아버지 그리고 그런 남편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잘 못 생각하면 주말가족여가가 재앙으로 변할 수도 있다.

 

최석호. 2007. "슈퍼맨의 주말여가". <한국일보> 11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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