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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연구 (Leisure Studies)

일과 여가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최석호 소장

2021년 2월 8일(월)

누군가 묻는다. 행복하세요?’

선뜻 답하지 못한다. 연봉이 얼마냐고 물으면 대답은 간단하다. 행복하냐고 물으면 곤란하다. ‘잘 살아 보세!’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행복하게 살아 보세!’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다. 가장 빠른 속도로 산업화를 이룩했다. 이제 살만 하다. 우리는 피터지게 싸웠다. 아시아 최초로 민주화를 달성했다. ‘이게 나라냐!’ 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밤늦게까지 일만 했을 뿐 잘 놀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잘사는 사회를 만들었을 뿐 행복한 사회를 만들지 못했다. 마지막 세계화 단계에서 넘어졌다. 재벌기업 본사 건물에 불이 꺼지지도 않았던 한 밤 중에 IMF 경제위기를 맞았다. 놀다가 경제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라 일만 하다가 경제위기를 맞았다.

불행한 여가편집자

조간신문을 읽었지만 경제신문도 읽는다. 7시 뉴스 본다. 8시 뉴스 본다. 9시 뉴스 본다, 12시 마감 뉴스 본다. 편집증 환자처럼 뉴스만 고집한다. 여자는 드라마만 본다. 자녀들은 게임만 한다. 뭔가 잘 못 됐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여가시간에 TV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15.8%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TV를 보는 사람은 80.0%.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여가활동은 여행(59.4%)·공연관람(43.2%)취미활동(34.2%) 등이다. 실제로 하는 여가활동은 TV시청(79.2%)휴식(69.0%)게임(39.5%) 등이다. 마치 중독된 사람처럼 하고 싶지 않은데도 계속 하고 있다. 여가시간에 특정한 여가활동만 한다. 여가편집자(餘暇偏執者). 행복할 수 없다.

 

놀고 싶어도 제대로 못 논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다. 한국사람이 행복하다면 그것은 기적이다. 2015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58개국 중에서 우리나라는 47위다. 세계행복보고서는 한국인을 다음과 같이 평한다. “어려울 때 도와 줄 사람이 없고, 정부와 기업에 부패가 만연해서 불행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앞으로 행복해질 가능성이 있는 국민이란다.

 

세계행복지수 53개국 중 47위

일과 여가

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날 무렵 미국이 참전한다. 최소한의 희생을 감수하고 승전국이 된 미국은 세계경제 패권을 장악한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은 전대미문의 풍요를 누린다. 여가학(Leisure Science)이 탄생한다. 여가학자가 다룬 첫 번째 연구주제, 일과 여가의 관계다. 여가와 일의 관계를 유형분류 한다.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 번째 유형은 수렴형(convergence type)이다.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여가 기량이나 능력도 출중하다. 일과 여가는 서로 비슷하다. 두 번째 유형은 대립형(opposition type)이다. 사람이 갖고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여가에 과도하게 몰입하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일에서 체험하는 것과 여가에서 체험하는 것은 서로 다르다. 세 번째 유형은 중립형(neutral type)이다. 일을 열심히 했다고 해서 여가에 쓸 에너지나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술꾼들은 아무리 배가 불러도 술 먹을 배는 따로 있다고 한다. 밥배와 술배는 따로 있다. 여가는 여가, 일은 일이다.

 

왜 이런 쓸데없는 연구를 했을까? 일 때문이다. 일과 여가를 대립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주로 힘든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힘들게 일하고 나면 제대로 놀 수가 없었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잘 놀기는 힘들다. 노는 것보다 쉬는 게 더 급하다. 중립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로 사무직 종사자들이다. 일하는 것이 크게 힘들지 않다.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자아를 실현하기도 한다. 일만큼이나 여가도 좋다. 마지막으로 일과 여가는 서로 수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로 전문직 종사자들이나 최고경영자들이다.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일은 여가나 마찬가지다. 일이 너무 재밌다. 당연히 장시간 노동을 한다. 놀 때도 일처럼 드라마틱하게 논다. 이 쯤 되면 대충 눈치를 챌 것이다. 왜 여가학자들이 일과 여가의 관계를 연구했는지 말이다. 한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면, 그 사람이 일과 여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일과 여가 관계유형

반대로 한 사람이 어떤 여가활동을 주로 하는지 알면, 그 사람이 일과 여가의 관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일과 여가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험적인 여가활동을 즐긴다. 캠핑을 가더라도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지 않고(Camp Ground Camping) 숲 속에서 텐트를 친다(Wilderness Camping). 중립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모범적인 여가활동을 한다. 파도가 높아서 위험하니 해수욕을 잠시 중단하라는 안내 방송을 하면 제일 먼저 해수욕장에서 나오는 사람이다. 당연히 캠핑장에서 캠핑을 한다. 일과 여가는 제로섬게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파괴적인 여가활동을 한다. 캠핑 안 간다. 그냥 바로 술 마시기 시작해서 해 뜰 때까지 마신다. 기어이 한 판 싸우고, 매춘하고, 마약한다. 노동에서 빼앗긴 것들을 여가에서 되찾으려고 한다. 하기 싫지만 꾹 참고 일 했으니 여가 시간에는 내 맘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원했던 여가시간이 오면 항상 파괴적이다. 제대로 놀 줄 모른다.

 

제대로 놀 줄 모르는 대립형의 사람은 중독을 일으키는 여가만 골라서 하는 경향이 있다. 여가편집자(餘暇偏執者). 그렇게 하고 싶어 했던 여가시간이 되어도 제대로 놀지 못한다. 불행하다. 정반대 유형인 수렴형은 모험적인 여가를 통해서 효율적인 여가활동을 한다. 그러나 여가시간이 너무 짧아서 제대로 못 논다. 잘 놀았다고 하더라도 여가흥분으로 인한 긴장상태를 이완시키지 못한 채 또 다시 일터로 향하기 때문에 결국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휴식 없는 긴장의 연속 그 결과는 매 한가지다. 세 번째 유형, 즉 중립형을 일컬어서 시간편집자(時間編輯者)라 한다. 여가편집자와 달리 시간편집자(時間編輯者)는 여가활동을 편집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여가활동을 편집한다. 편집한 활동을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만큼 한다. 그래서 행복하다.

행복비결

잘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려면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영국 신경제재단 웰빙센터에서는 다섯 가지를 실천하라고 권고한다. 영국 정부가 경험적 증거에 기반해서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미래 프로그램’(The Foresight Programme)의 일환으로 실시한 ‘2008 정신자본과 웰빙 프로젝트’(The 2008 Mental Capital and Well-Being Project)의 결론으로 제시한 다섯 가지 행복비결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함께 하라’(Connect)! 절대 혼자서 행복한 사람은 없다. 가족·이웃·동료·친구·연인 등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라. 그들에게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도와 줄 것이고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영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질환조사에서 건강한 사람과 정신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 간에 한 가지 큰 차이점을 발견했다. 정신건강이 좋지 못한 사람은 주변에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특히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가 세 명 이하인 경우에 정신질환을 앓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둘째, ‘밖으로 나가라’(Be Active)! 집에 틀어 박혀서 TV나 보고 있으면 저질인생으로 전락한다. 밖으로 나가서 산책을 하거나 뛰어라. 자전거를 타도 좋고 화단을 가꿔도 좋다. 못 나갈 상황이라면 TV를 꺼라. 차라리 라디오를 켜고 춤을 춰라. 여하튼 나에게 꼭 맞는 몸 놀이를 빨리 찾아라. 우울증 치료를 위한 약물처방과 운동처방 실험 결과에 따르면, 1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더라도 기분이 좋아진다. 한 주에 세 번 내지 다섯 번 적당하게 운동을 하면 우울증도 확연하게 개선된다. 어린이가 몸 놀이를 하면 인지능력이 향상되고, 노인은 인지능력 저하를 예방할 수 있다.

 

셋째, ‘호기심을 가져라’(Take Notice)! 꽃이 아름답게 피었는지 아니면 하얀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확인하라. 변화에 주목하라. 애인 헤어스타일이 달라지지 않았는지, 친구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돌지 않는지, 주변을 살피고 주변 사람들을 유심히 보라. 일하러 가든, 점심을 먹든, 친구들과 수다를 떨든, 무엇을 하든지 간에 매 순간을 즐겨라. 주변이나 주변 사람이 아니라 당신이 행복해진다. 펜실바니아 원기회복 프로그램(The Pennsylvania Resiliency Programme)에서 개발한 인지행동테라피 테크닉을 영국 3개 지방 초등학교학생들에게 적용했다. 자신의 감각이나 생각 또는 느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훈련이었는데, 8주에서 12주 동안 이 훈련을 받으면 여러 해에 걸쳐서 행복감이 높아졌다. 자율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서도 자신의 가치와 이해에 따라 스스로 행동을 결정하면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넷째, ‘계속 배우라’(Keep Learning)! 오래된 것을 새롭게 보고, 새로운 시도를 하라. 고장 난 자전거를 직접 고쳐보라. 좋아하는 음식 요리법을 배워서 직접 요리하라. 악기를 배우라. 달성할 수 있는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라.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의외로 재밌다. 평생학습은 자존심을 높이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활발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노인이 공부를 하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고, 어린이가 뭔가를 배우면 지능과 사회성이 발달한다. 성인이 스스로 학습목표를 세우고 목표지향적인 행동을 하면 행복해진다.

 

마지막으로, ‘아낌없이 주라’(Give)! 친구나 모르는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고, 매사에 감사하고, 이웃에게 자원봉사 하고, 동호회에 가입하라.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줄 때마다 뇌에서 행복을 느낀다.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서 매일 아침 100달러를 줬다. 한 집단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100달러를 쓰게 하고, 다른 집단에게는 자신을 위해 100달러를 쓰도록 했다. 남에게 100달러를 준 사람이 훨씬 더 큰 행복을 느낀다. 서로 협력하면 뇌의 보상영역에서 신경반응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사회적 협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된다는 뜻이다. 특히 노인이 자원봉사활동을 하면 일상생활에 활력이 넘치고 삶에 의미가 생긴다.

행복한 시간편집자

일이 해답이 아니라면 여가에서 해답을 찾아보자. 우리는 상식적으로 여가를 생각한다. 일에서 벗어나 즐겁게 놀고 편안하게 휴식하는 것을 여가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여가는 삶이고 투쟁이다. 여가는 즐거운 휴식이 아니다. 강렬한 자극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막장으로 치닫는다. 소설에는 불륜이 난무한다. 영화는 수 백 명이 죽어야 끝난다. 대중음악은 발광한다. 여가 막장, 여가 불륜, 여가 살인, 여가 발광을 통해서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 실제로 발광하거나, 실제로 사람을 죽이거나, 실제로 불륜을 저지르거나, 실제로 막장인생으로 치달으면 안 된다. 구속된다. 여가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하기만 해야 한다. 그렇다. 안전하지만 지겨운 일상에 강렬한 자극을 주는 것이 여가다.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훅 날아간다. 후련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잔치는 끝났다. 급속한 성장시대는 끝났다. ‘잘 살아 보세는 답이 아니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냈다. 더 맑고 더 밝은 새해를 소망한다. 여가편집자가 되지 말고 시간편집자가 되자. 행복하게 살아보자. 친구와 함께 하자! TV 끄고 밖으로 나가자! 아내가 아름다운 이유 한 가지만 발견하자! 65세에 은퇴하고 올해로 95세를 맞은 호서대학교 설립자 강석규 선생은 후회한다. 은퇴할 때는 95세까지 살 줄 몰랐기 때문에 더 이상 공부하지 않았다. 105세가 되었을 때 또 다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어학공부를 시작했다. 배우자! 조금이라도 득 보려고 아등바등 하지 말고 남에게 베풀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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