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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연구 (Leisure Studies)

베스트셀러의 자화상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

2020616()

 

1992년 인문과학 분야에서 선풍을 일으킨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스테디셀러다. 발전국가가 주도했던 근대화 시기 동안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우리 전통과 민족정체성 등 우리 것을 재발견하는 계기를 형성한 책이다. 게다가 전 세계 그 어떤 문화유산과도 비교할 수 없는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유려한 필치로 써 내려감으로써 최대의 화제작이 되었다. 그즈음 소설 분야의 베스트셀러에서도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도드라진다.

민족정체성과 베스트셀러

1993년 열림원에서 출간한 이청준의 서편제가 가장 전형적이라 할 수 있겠다. 서구적 근대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우리 소리를 지키기 위해 딸의 눈까지도 멀게 만드는 한 소리꾼 이야기는 서구화에 눈멀었던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되찾기 위해서 오늘 우리가 지불해야 할 대가는 무엇인지를 문학적으로 보여 주면서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스테디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서편제》

또 다른 현재를 보여주는 김진명의 장편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반쪽의 우리 북한에 대한 관심 하에서 나온 베스트셀러였다. 박정희의 핵개발계획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재미 물리학자 이휘소를 모델로 한 이 소설은 남북한이 힘을 합쳐 일본에 맞서는 내용으로 합작 핵미사일 제조로 끝을 맺는다. 이 소설에서 미국은 남, 일본은 적, 북한은 형제로 등장한다. 건국 이후 줄곧 우리의 민족적 자의식 언저리에서 우리를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해 왔던 일본을 다시 보게 한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것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역으로 일본을 비롯한 외국인의 시각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바라본 책들도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 따라 잡는 18가지 이유, 한국, 한국인 비판, 발칙한 한국학등이 그것이다. 세계화로 말미암아 민족정체성을 자극 받으면서 우리 과거 역사를 되돌아보았다. 영원한 제국,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덕혜옹주, 남한산성, 칼의 노래등등. 또한 과거의 한국사상으로 현재의 한국을 반추하는 작업도 진행했는데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노자와 21세기, 도올 논어등 베스트셀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중에서 두 권은 김용옥 선생이 EBSKBS를 통해 방송한 특강이었다. 출판시장에서 미디어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베스트셀러 작가 도올 김용옥 EBS특강

미디어 베스트셀러

장기적으로 보면, 출판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는 구미디어에서 신미디어로 바뀌어갔다. 근대적 대중여가 형성기에는 신문사가 베스트셀러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였다. 신문에 매일 연재되는 소설이나 한 주에 한 차례씩 게재되는 에세이 등은 연재가 끝난 뒤 단행본으로 발간되어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 이 시기의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근대적 대중여가 발전기에는 종로서적·교보문고 등 대형서점에서 매주 집계하는 판매량 통계가 곧바로 베스트셀러로 통했다. 출판사는 자사에서 출간한 책을 대형서점에서 되사는 사재기 열풍이 불기도 했다. 대형서점 판매량 통계가 곧 바로 베스트셀러로 통했기 때문이다.

 

이후 베스트셀러에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는 공중파 방송사로 옮겨갔다. KBS 1<TV 책을 말하다>, MBC<행복한 책읽기><느낌표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등이 꽤 반향을 일으켰다. 연탄길, 괭이부리말 아이들, 봉순이 언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등 많은 책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구미디어가 낳은 베스트셀러

JTBC <차이나는 클라스>, tvN <비밀독서단> <알쓸신잡> <책 읽어드립니다> 등 사례에서 보듯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유시민·설민석·김영하 등이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것은 글의 힘이 아니라 방송의 힘이다. 다만 공중파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종편사 또는 케이블TV 도서 관련 프로그램으로 이동 현상이 두드러졌다.

베스트셀러를 생산하는 방송 프로그램

1994년 컴퓨터통신에서부터 시작한 신미디어의 영향력은 2019SNS에서 정점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컴퓨터통신을 통해 연재되어 인기를 끈 퇴마록이 종이책으로 출판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 뒤를 이어서 드래곤라자, 늑대의 유혹, 그 놈은 멋있었다등 인터넷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정보화의 영향은 사이버 소설의 오프라인 출판뿐만 아니라 컴퓨터와 인터넷 그 자체를 다룬 도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 만큼 한다, 미래로 가는 길, 인터넷 무작정 따라 하기, 빌게이츠의 미래로 가는 길등이 베스트셀러 행진을 이어나갔다.

 

2018년과 2019년 최근 두 해 동안 SNS와 같은 신미디어는 생산에서 홍보를 거쳐 소비까지 아우르는 출판산업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플랫폼에서 김지훈·김재식 등은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고, 모든 순간이 너였어, 82년생 김지영, 앨리스죽이기, 어떤 하루, 곰돌이 푸, 행복은 매일 있어등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신미디어가 낳은 베스트셀러

경제위기와 베스트셀러

우리 국민들은 책읽기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섰다. 한국의 부자들, 블루오션전략, 2010 대한민국 트렌드, 부의 미래,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더 해빙, 돈의 속성, 백만장자 시크릿등의 베스트셀러에서 보듯이 계속된 경제위기는 돈벌기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경제 위기 속에서 자신의 삶과 경제적 능력을 되돌아보게 했다. 199712월 한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경제위기가 경제적 세계화의 한 양상이었다는 점과 이 책이 전 세계에서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점에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세계화가 만들어 낸 베스트셀러였다.

 

또한 돈을 벌 수 있는 인성을 갖추기 위한 피나는 노력도 경주했다. 아침형 인간, 이기는 습관,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 마시멜로 이야기등의 베스트셀러는 그래서 가벼운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처절한 자기계발서다. 또한 경제위기로 초래된 가족해체의 위기 앞에서 부성애와 가족애를 다시 일깨워준 아버지, 가시고기등과 같은 책들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경제위기와 베스트셀러

그러나 경제위기는 멈추지 않았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미국발 경제위기와 금융위기는 전 세계를 다시 한 번 강타했다. 이번에도 한국은 예외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상황에서 계속된 경제위기는 결국 양극화로 이어졌다. 경제위기 속에서 중산층은 몰락하는데도 상승 이동의 경로는 더욱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청년들에게 실업을, 30대에게 불안을, 40대에게 과로사를, 50대에게 조기퇴직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60대 이후의 세대들에게 기나긴 파고다공원 생활을 강요했다. 신자유주의는 노력해도 사다리를 올라갈 수 없다는 좌절을 안겨주었고, 불안과 분노를 팽배하게 했으며, 지레 포기하게 만들었다.

밀리언셀러

이러한 사회변동 과정은 베스트셀러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사회가 양극화된 것처럼 베스트셀러도 소수 책들이 대부분의 시장을 장악하는 양극화가 나타났다. 이제 베스트셀러는 동시에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그런 만큼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한 책들은 폐지값으로 팔려나가는 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베스트셀러이면서 동시에 밀리언셀러에 등극한 책들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반갑다 논리야, 엄마를 부탁해, 칼의 노래, 정의란 무엇인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등이 있다. 전자의 세 권 은 1990년대 밀리언셀러이고 나머지는 2000년 이후의 밀리언셀러다. 전자가 정체성정치의 장으로서 책읽기를 보여준다면, 후자는 좌절과 분노의 장으로서 책읽기 과정의 결과다.

밀리언셀러

독서는 더 이상 단순한 심심풀이 땅콩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시간도 많은데 책이나 읽지 뭐라고 책읽기를 가볍게 여긴다. 장식용이 되어버린 베스트셀러는 독자의 집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책을 읽었다. 책읽기를 통해 정체성정치(identity politics)를 펼쳤다. 다만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한편으로 세계화 상황이 초래한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은 베스트셀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 자기계발서와 경제경영서를 그렇게 많이 읽었다. 그러나 양극화로 말미암아 중산층은 몰락하고 몰락한 중산층의 상승 이동은 차단당하면서 좌절은 절망을 초래했다. 급기야 자기계발서는 위축되고, 정의롭지 못한 우리 사회에 대한 분노와 좌절, 그리고 대안을 찾고자 하는 베스트셀러들이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서점가 큰손의 연령층 변동으로 이어졌다. 2009년 미국발 경제위기 때 가장 큰 손은 20대였다. 전체 독자 중 35.5%를 차지했다. 2018년 우리 서점가 가장 큰 손은 40대다. 30.9%를 차지하고 있다. 취업난을 겪고 있는 20대 청년들은 도서구매력을 상실했다. 경제적 안정기에 접어든 40대가 그 빈자리를 메웠다. 우리가 겪고 있는 만성적인 경제위기는 책 한 권을 사는데도 주저하게 만든다.

출처 : 교보문고. 2018. 《베스트셀러 도서판매 동향 및 분석》 5쪽

책 한 권도 맘대로 살 수 없는 20대는 불행하다. 아무런 꿈도 미래도 없는 세상에 버려진 생명처럼 태어나서 무한경쟁을 강요당하는 20대에게 현실은 암울하다. 책 한 권 살 수는 있다. 그러나 힘든 건 마찬가지다. 충분히 고달프게 살고 견디어 냈는데 또 다시 인생2모작과 3모작을 준비하란다. 40대도 20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책 한 권 살 수 있는 사람과 그마저도 살 수 없는 사람사이에 차이는 딱 책 한 권이다. 위로를 무기로 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책들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3년 연속 종합순위 10위 안에 든 베스트셀러다. 친절하지 않은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필요 없다. 노력하지 마라. 비참해질 뿐이다. 내 인생을 스쳐지나가는 사람에게 상처받지 마라. 자신에게 자부심을 가져라. 몸무게·연봉·학점·집평수·토익점수! 인생에서 숫자를 지워버려라. 이렇게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마디도 틀린 말이 없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미움 받을 용기,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등은 위로를 무기로 베스트셀러를 점령했다.

베스트셀러의 키워드 "위로"

베스트셀러는 지난 30년 동안 격동의 한 시대를 자세하게 써 놓았다. 독서는 더 이상 심심풀이 땅콩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어떤 변화의 궤적을 그릴까? 우리는 어떤 책으로 우리 자화상을 그릴까? 앞으로 또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인지를 묻는다.

참고문헌

교보문고. 2018. 베스트셀러 도서판매 동향 및 분석

최석호. 2017. 시간편집자 어느 여가사회학자의 행복에 관한 연구MBC C&I.

한기호. 2011. 베스트셀러 30교보문고.

교보문고 종합연간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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