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자. 석영중 교수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학 및 대학원에서 '도스또예프스끼', '러시아 문학과 종교', '러시아 문학 기행'을 강의하면서 학생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어냈다.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과 한국슬라브학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세계 최초로 러시아 국민 시인 푸시킨의 전 작품집을 번역한 공로로 1999년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시킨 메달을 받았고, 2000년 한국백상출판문화상 번역상을 받았다.
저서로 《인간만세: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읽기》, 《자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우다》,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도스토옙스키의 《분신》, 《가난한 사람들》, 《백야 외》(공역),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공역),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 《대위의 딸》, 체호프의 《지루한 이야기》, 자먀틴의 《우리들》, 마야콥스키의 《마야꼬프스끼 선집》,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등이 있다.
2. 서책 《매핑 도스토옙스키》
1821년 10월 30일 모스크바 마린스키빈민병원 공중보건의 미하힐 도스토옙스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동네에서 러시아 빈민의 삶을 지켜보면서 성장한다. 첫 소설 《가난한 사람들》에 녹여낸다.
아버지는 1828년 성 안나 훈장을 받고 8등관으로 승진하여 세습귀족이 된다.인문학을 공부하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던 아버지는 1837년 5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데려간다. 1831년 1월부터 1843년 8월까지 공병학교에서 공부한다. 졸업한 뒤 장교로 임관하고 전역한 뒤 쓴 소설이 《가난한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한 연민을 소설로 표현했다.
공병학교 건물 미하일롭스키 성은 1801년 3월 11일 쿠데타로 목숨을 잃은 황제가 마지막 40일을 살았던 곳이다. 어두운 층계와 황폐한 현관은 흡사 유령의 집을 방불케 한다. 도스토옙스키 두 번째 소설 《분신》에서 마지막 소설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에 이르기까지 유령, 분신, 환영 등 초자연적인 존재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1839년 어머니가 폐병으로 사망한다. 술로 소일하면서 농노들을 학대하던 아버지 미하힐 도스토옙스키도 1839년 모스크바 남동쪽 160킬로미터 다로보예마을과 체레모시냐마을 사이 숲길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한다.
농노해방을 위해 싸웠던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반체제 인사들을 농노들이 적대시 하는 것을 보고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고통을 지옥”이라고 요약한다. 사회주의와 작별한다.
1848년 2월 프랑스혁명에 고무된 공상적 사회주의자 페트라셉스키 서클에서 활동하던 도스토옙스키는 1849년 4월 23일 체포되어 군사법정에서 내란음모죄로 징역 4년에 사병복무형을 받는다. 사형을 코스프레를 겪은 뒤 시베리아 유형지로 떠난다. 군사재판 경험과 사형 직전에 풀려난 경험을 《백치》 《악령》 《죄와 벌》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등 소설 속 소재로 활용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1850년 1월 23일부터 1854년 2월 15일까지 만4년 동안 돼지우리 같은 서시베리아 유형지 옴스크에서 죽어지낸다.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서 쓴 자전적 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에 고스란히 담았다. 과거 이상주의와 완전히 결별한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을 관찰하고 자유를 갈망한다. 자유는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다. 본능이자 가치로서 자유는 인간을 선 또는 악의 상태로 인도한다. 착한 사람은 가치로서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나쁜 사람은 본능으로서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인간은 가치추구와 본능충족 사이 어딘엔가 존재한다. 가치로서 자유를 지향하는 삶이 인간다운 삶이다.
1854년 2월 15일부터 1859년 7월 2일까지 카자흐스탄 세매이(세미팔라틴스크)에서 군대생활을 한다. 브란겔 남작의 도움을 받고 영외 셋집 서재에서 생활하면서 《아저씨의 꿈》 《스테판치코보 마을 사람들》등을 집필한다. 독실한 크리스챤으로 거듭난다.
1856년 10월 1일 장교로 진급하고, 1857년 2월 6일 마리아 이사예바와 결혼한다. 금새 파경을 맞는다. 그러나 끝까지 아내의 죽음을 지킨다. 아내 마리아를 모델로 창조한 인물이 《죄와 벌》에 나오는 술주정뱅이 마르멜라도프의 아내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다.
1862년 유럽 여행을 떠난 도스토옙스키는 영국 만국박람회장 수정궁(Crystal Palace)에서 기술이 권력을 넘어 종교가 되는 미래사회를 본다. 오만한 인간정신과 그 정신을 추종하는 맹목에 경악한다. 수정궁은 과거의 신을 밟고 등장한 새로운 신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는 디스토피아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죄와 벌》에서는 선술집 이름으로 사용한다.
1866년 10월 4일 젊은 속기사 안나 스닛키나(Anna Grigorevna Dostoevskaya, 1846~1918)는 새로 산 서류 가방을 들고 알론킨 주택 13호 도스토옙스키의 허름한 셋집 벨을 누른다. 다음날부터 10월 29일까지 도스토옙스키는 구술하고 안나는 받아 적어서 26일만에 《도박꾼》을 완성한다. 두 사람은 아예 같이 산다. 도스토옙스키는 장편을 쓰기 시작한다.
1867년 4월부터 1871년 7월까지 4년 3개월 동안 스위스, 독일, 이칼리아 등에 있는 수 많은 도시를 떠돌아다닌다. 해외체류는 안나의 뜻에 따른 것이다. 시어머니 노릇을 하는 남편의 형수, 전처의 아들 파벨 이사예프 등의 등살에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도박에서 겨우 벗어난다. 첫째 딸을 잃는다. 둘째 딸을 얻는다. 《백치》 《영원한 남편》 《악령》등을 완성한다.
1871년 7월 8일 해외생활을 마치고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다. 보수적인 잡지 《시민》 편집장으로서 1873년 1월부터 1874년 4월까지 일한 뒤 《작가일기》라는 월간지를 창간한다. 1876년 1월부터 만2년 동안 발행한다.
1874년과 1875년 겨울을 스타라야 루사에서 보낸다. 1872년 5월 모스크바에서 북서쪽으로 560킬로미터 떨어진 스타라야 루사로 간다. 1877년 초 스타라야 루사에서 집을 산다. 이 집에서 《악령》을 완성하고,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2/3를 쓴다. 1877년 12월호 《작가일기》를 끝으로 정간한 뒤 1879년 1월부터 1880년 11월까지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연재를 마친다. 1881년 1월 28일 가족 품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난다.
3. 독자 - 독서클럽 삼락구락부
4. 한 줄 독서
5. 평점 - 8.4점 3위
6. 차회예고 - 《오리진 : 우주 진화 140억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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