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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구락부

북리뷰《앵무새 죽이기》

가서 파수꾼을 세워라》 출간

 

201524일 외신을 타고 흥미로운 소식이 들어왔다. 우리에게 앵무새 죽이기로 잘 알려진 저자 하퍼 리(Harper Lee)가 잃어버린 원고 가서 파수꾼을 세워라(Go Set a Watchman)를 찾았다는 소식이다. 1950년대 중반에 분실한 원고로서 앵무새 죽이기의 주인공 스카우트 핀치(Scout Finch)가 성인이 되어서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결국 앵무새 죽이기의 속편인 셈인데, 실제로는 파수꾼》을 먼저 썼다고 한다. 원고를 분실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앵무새 죽이기만 출판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 호들갑을 떠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앵무새 죽이기가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이다. 전세계 40개 언어로 번역·출판되었을 뿐만 아니라 3천만 부 이상 팔린 책이다. 속편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다음으로, 저자 하퍼 리는 1960앵무새 죽이기를 출판한 이후로 지금까지 그 어떤 책도 출판하지 않았다. 드디어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책을 찾은 셈이다. 뒤집어 질만 하다.

 

재목을 강조한 《앵무새 죽이기》 영문초판 표지와 저자를 강조한 《파수꾼》 영문초판 표지. 《앵무새 죽이기》와 달리 《파수꾼》은 출간과 동시에 거센 비판을 받았다.

앵무새 죽이기1961년 픽션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한데 이어서 미국 의회도서관 조사에서는 성서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놓은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2006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이 발표한 도서관 사서 선정 필독서’(Librarians’ Must-Read List)에서는 성서를 체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과연 무슨 마력이 있기에 사람들은 이 책에 이렇게도 열광하는 것일까?

 

영국 도서관 사서가 선정한 10대 필독서(Librarians' Must-Read List)

1위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 2위 《성서》 / 3위 존 톨킨 《반지의 제왕》 / 4위 조지 오웰 《1984》 / 5위 찰스 디킨스. 《크리스마스 캐롤》 / 6위 라마르크 《서부전선 이상 없다》 / 7위 필립 풀만 《황금나침반》 / 8위 세바스찬 폴크스 《버드 송》 / 9위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 10위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

 

Harper Lee가 쓴 《앵무새 죽이기》가 'Librarians' Must-Read List'에서 《성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세상이 왜이래?

한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동네를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다. 뿐만 아니다. 동네 사람들의 행동은 더 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같이 살아야한다면 아니 사이좋게 살려면 어떤 식으로든 이해를 해야만 했다. 그 소녀는 동네와 동네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썼다. 그 소녀는 하퍼 리, 그 책이 바로 앵무새 죽이기.

 

《앵무새 죽이기》 저자 Harper Lee

난 네가 뒤뜰에 나가 깡통이나 쏘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새들도 쏘게 될 거야. 맞출 수만 있다면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sin)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뿐이지 사람들 채소밭에서 무엇을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지.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앵무새 죽이기》 172쪽에서 173쪽)

 

그렇다! 아무런 해를 끼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온 맘 다해 노래를 불러주는 저 착하고 힘없는 앵무새를 죽이는 동네사람들을 소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이 동네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만 이해할 수 있다면, 왜 앵무새를 죽이는지를 알 수 있다면, 우리 동네와 동네사람들을 정말 사랑할 수 있겠는데 말이다.

 

다섯 살 꼬맹이 하퍼 리가 이해할 수 없었던 실제 사건은 백인 소녀 강간혐의로 기소된 아홉 명의 흑인 소년에 대한 재판이었다. 1931325일 차타누가와 멤피스 사이를 오가는 화물열차에서 백인 청소년들이 알라바마 페인트 록 역에서 뛰어내렸다. 백인 소년들은 흑인들에게 맞았다고 했고, 백인 소녀들은 흑인들에게 강간당했다고 했다.

 

구속된 아홉 명의 흑인 소년들, 스코츠버러 소년들(Scottsboro Boys)은 알라바마 스코츠버러에서 재판을 받았다. 속전속결로 진행된 재판에서 백인으로만 구성된 배심원 전원 일치로 유죄평결을 내렸고, 특히 강간죄로 기소된 열두 살 흑인 소년 로이 라이트(Roy Wright)에게는 사형을 선고했다. 아홉 명의 흑인 소년들은 백인 소녀에게 손도 대지 않았고 두 명의 백인 소년과는 기차가 터널을 지날 때 잠깐 몸싸움을 했을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이후 흑인 소년들이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은 계속 됐고 네 명의 흑인 소년에 대한 기소는 기각되었지만 나머지 다섯 명의 흑인 소년은 75년형에서 사형까지 구형받았다.

 

무고하게 기소당해 아홉 명의 흑인 소년 스코츠버러 소년들 (Scottsboro Boys) 과 그들을 변호했던 사무엘 레보위츠 (Samuel Leibowitz)  변호사와 스코츠버러 소년들에게 강간당했다고 거짓 고발한 두 백인 소녀 루비 베이츠 (Ruby Bates) 와 빅토리아 프라이스 (Victoria Price).

징역형을 살고 있던 두 명 중 한 명은 초병이 쏜 총에 맞아서 불구가 되었고, 한 명은 탈출했다. 사형을 구형받은 클라렌스 노리스(Clarence Norrice)1946년 가석방되자마자 종적을 감췄다. 사건이 발생한지 무려 45년이나 지난 1976년에서야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는데, 세상으로 다시 나오자 주지사 조지 월레스(George Wallace)는 노리스를 사면 한다, 스코츠버러 소년들 중 마지막 생존자가 사망한 것은 지난 1989년이었고, 20131121일 알라바마 주 가석방위원회는 끝까지 사면을 받지 못했던 세 명의 스코츠버러 소년들에게 사후 사면 또는 판결 번복 결정을 내림으로써 사건을 종결한다. 아무런 죄도 없고 힘도 없는 흑인 소년들이 모두 죽고 난 후에도 25년이나 더 지난 다음에서야 겨우 앵무새 죽이기를 멈춘다.

 

백인들의 광적인 앵무새 죽이기를 이해 할 수 없었던 하퍼 리는 소설을 쓴다. 같은 시점인 1931년에 같은 장소인 알라바마 주를 배경으로 같은 사건, 즉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위증 때문에 사형을 구형받아야 했던 스코츠버러 소년 재판을 다룬 소설을 쓴다. 앵무새 죽이기가 바로 그 소설이다.

소설 앵무새 죽이기

미국 남부 알라바마 주 메이콤 카운티에 사는 스카우트 핀치는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아버지 아티커스 핀치는 변호사다. 오빠 젬 핀치는 초등학교 상급생이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스카우트가 보기에 동네사람들은 평화롭게 살고 있지만, 단 한 가지 흑인 이야기만 나오면 이성을 잃고 날뛴다.

 

그래서인지 흑인들은 강 남쪽에 살았고 백인들은 북쪽에 살았다. 동네사람들은 흑인여자와 같이 살면서 혼혈아를 낳은 돌퍼스 레이먼드 아저씨를 백인 쓰레기라고 하면서 같이 어울리지 않는다.

 

래들리 집안사람들은 좀처럼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한 때 동네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싸움박질을 하고 돌아다니는 바람에 래들리 아저씨 속깨나 섞였던 아들 부 래들리는 집에서 나오지 않은지 20년이 넘었다.

 

로버트 이웰 아저씨는 한 때 흑인이 살았던 쓰레기장 옆 판자집에서 몇 명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아이들과 살고 있다. 항상 탄환을 두른 허리띠를 차고 다니고 쓰레기장을 뒤져서 연명한다. 온 식구가 먹고 살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생활기금을 받는다. 그런데 로버트 이웰 아저씨는 생활기금을 술로 탕진해 버린다. 맏딸 메이옐라 이웰은 거의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매년 입학식 날에만 등교하는 버리스 이웰은 3년째 초등학교 1학년이다.

 

그러던 어느 날 로버트 이웰 아저씨가 매일 자기 집 앞을 지나 일하러 가는 흑인 톰 로빈슨을 보안관 헥 테이트에게 고발한다. 톰 로빈슨이 일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마침 집에 혼자 있던 자신의 딸 메이옐라 이웰을 강간하려 했다는 것이다. 메이옐라는 실제로 목과 오른쪽 눈에 상처를 입었다.

 

변호를 맡은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톰 로빈슨이 목화농장에서 일 하다가 왼손을 다쳐서 쓸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서 톰 로빈슨의 무죄를 주장한다. 다급한 상황에서 왼손을 쓸 수 없는 톰 로빈슨이 메이옐라의 오른쪽 눈을 때릴 수 없고 목을 조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왼손잡이인 메이옐라의 아버지 로버트 이웰이 메이옐라를 때렸을 개연성이 크다는 취지의 변호였다. 그러나 백인으로만 구성된 배심원 전원은 흑인 톰 로빈슨에게 유죄 평결을 내린다.

 

아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인종적 편견에 맞서 흑인 톰 로빈슨의 결백을 입증했지만 결국 편견의 벽을 넘지못했다. 2층 흑인석을 가득 메운 흑인들이 모두 기립한 가운데 텅빈 법정을 빠져나가고 있다.

교도소로 이감된 톰 로빈슨은 운동시간에 갑자기 미친 듯이 돌진해서 교도소 담장을 넘기 시작한다. 왼팔을 쓸 수 없었던 톰은 교도소 담장을 넘을 수 없었지만 초병들은 총을 쏜다. 무려 열일곱 발이나 되는 탄환을 맞고 사망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할로윈축제 날 저녁 로버트 이웰이 칼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화창한 9월 마지막 날 저녁 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할로윈축제 연극에 출연한 스카웃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젬은 팔이 부러진 채로 의식을 잃는다. 로버트 이웰의 소행이었다. 스카웃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즈음 부 래들리가 나타나 구해준다. 그 과정에서 로버트 이웰은 자신의 칼에 맞아 죽는다. 사건의 전모를 확인한 보안관 헥 테이트는 모든 것을 덮어두자고 아티커스 핀치 변호사에게 요청한다.

 

아무 이유 없이 흑인 청년 한 사람이 죽었고, 그 죽음에 책임 있는 자도 죽었습니다. 이번에는 죽은 자가 죽은 자를 묻어버리게 하세요, 변호사님 .‥‥‥ 한 시민이 범죄가 자행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막은 것이 법에 저촉된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가 한 행동이 바로 그렇지요. 하지만 변호사님은 읍내 사람들에게 하나도 숨김없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게 제 의무라고 말씀하시겠지요 .‥‥‥ 변호사님과 카운티 사람들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한 저 부끄럼 많은 사람을 백일하에 끌어낸다는 건, 저에게는 그건 죄악이지요. 그리고 전 절대로 그런 죄악을 저지를 순 없습니다. 저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사정은 달랐을 겁니다. 하지만 변호사님 저 사람은 아니지요.”

 

헥 테이트 보안관이 떠난 후에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딸 스카웃에게 되묻는다. 이웰씨는 자기 칼에 넘어져 죽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냐고 말이다. 스카웃의 대답을 통해 저자 하퍼 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미국 남부 작은 마을과 그 마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 아빠. 전 이해할 수 있어요. 테이트 아저씨 말씀이 옳아요 .‥‥‥ 말하자면 앵무새를 쏘아 죽이는 것과 같은 것이죠. 아니에요?” (《앵무새 죽이기》 518쪽에서 520쪽)

영화 <앵무새 죽이기>

1960년 출간된 원작 소설 앵무새 죽이기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1962년 영화로도 제작된다. 같은 이름의 영화 <앵무새 죽이기>2007620일 영화평론가, 영화학자, 영화제작자 등으로 구성된 1,500명의 판정단이 뽑은 미국 100대 영화 중 25위를 차지한다. 주인공 그레고리 펙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미국 50대 배우 중 12위에 오른다. 2003CBS를 통해 방송된 미국 50대 영화 영웅에서 <앵무새 죽이기>의 아티커스 핀치가 1위에 선정된다.

 

아티커스 핀치 변호사를 연기하기 위해 그레고리 펙은 아티커스의 모델이었던 저자 하퍼 리의 아버지를 만나고, 하퍼 리는 그레고리 펙에게 아버지의 시계를 선물하는 등 주인공과 저자 모두 소설을 영화화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200만 달러를 들여서 제작한 이 영화는 2,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소설에 이은 또 하나의 히트를 기록한다.

 

영화 <앵무새 죽이기> 주연배우 그레고리 펙과 소설 《앵무새 죽이기》 저자 하퍼 리

젊은이로 성장한 스카우트가 아버지를 찾아가면서 시작되는 하퍼 리의 두 번째 소설이자 앵무새 죽이기의 속편인 가서 파수꾼을 세워라》영화로 만들면 또 한 편의 명화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벌써부터 인터넷에서는 누가 아티커스 핀치와 스카우트 핀치를 연기할지에 대한 질문이 올라오고 있다. 조지 클루니, 톰 행크스 등이 그레고리 펙 대역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2015년 파수꾼》을 출간된 이듬 해 2016년 하퍼 리는 90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책 내용을 둘러싸고 날선 비판이 쏟아진다. 앵무새 죽이기》와는 전혀 다른 주장을 담고 있어서 동일한 저자가 쓴 책이라고 믿기 힘들다. 전편의 감동을 기억하고 있는 독자는 무미건조한데다가 문자만 나열해 놓은 듯한 책을 하퍼 리가 썼다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최석호. 207. 《시간편집자》 MBC C&I. 127쪽에서 1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