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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구락부

북리뷰《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가 출간된 1960년 무렵 잉글랜드에서는 눈부신 성장을 이룩한 산업도시 레스터(Leicester) 교외에 있는 윈스톤 파르바(Winston Parvat)라는 마을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노버트 엘리아스(Norbert Elias)라는 사회학자는 1958년부터 1960년까지 3년 동안 윈스톤 파르바에서 살다시피 한다. 그곳에서 집단 자긍심을 높이는 방식과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또 다른 집단을 연구한 것이다.

 

나치에게 쫓겨서 영국으로 망명한 유대계 독일인이었던 엘리아스 자신에 대한 연구일 수도 있다. 비유하자면, 애향심만으로도 자긍심을 충분히 높일 수 있는데 왜 굳이 지역감정을 조장하여 다른 집단을 희생시켜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엘리아스는 이해할 수 없는 시대와 설명할 수 없는 사회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현장에서 조사연구를 했고, 그 연구를 한 권의 책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에 담았다. 나치에게 앵무새 죽이기를 당한 유대인 엘리아스는 잉글랜드 레스터 교외 윈스톤 파르바에서 집단간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연구한다. 하퍼 리는 미국 남부 알라바마 주 메이콤 카운티에 사는 백인의 이해할 수 없는 인종차별에 맞서 앵무새 죽이기를 썼다.

 

엘리아스는 윈스톤 파르바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윈스톤 파르바에 새로 들어온 노동자들은 3구역에 살았다. 전문직종사자는 주로 1구역에 자리를 잡았다. 기존 노동자들은 2구역에서 살았다.

노버트 엘리아스. 《앵무새 죽이기》 박미애 역. 한길사.

윈스톤 파르바의 앵무새 죽이기 : 노-노 갈등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윈스턴 파르바의 세 구역에 사는 주민들 사이에 서열이 있다는 것이다. 부유한 토박이들과 전문직종사자들이 주로 사는 1구역 주민들은 존경받는 집단이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2구역과 3구역인데, 토박이노동자들이 주로 살고 있는 2구역 주민들이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사는 3구역 주민들보다 더 높은 위계를 차지하고 있다. 2구역과 3구역은 모두 백인 노동자들이 사는 곳이었고, 따라서 경제적으로도 별다른 차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범죄율도 비슷했다. 그런데도 2구역 주민은 우등집단으로 여겨졌고 3구역 주민은 열등집단으로 간주되었다. 서로 다른 두 노동자집단 사이에 권력관계가 작동했던 것이다.

 

2구역에 사는 기득권자집단(the Established)은 그 곳에서 오래 살았고 응집력이 강했다. 3구역에 사는 아웃사이더집단(the Outsiders)은 새로 이사를 왔고 응집력이 약했다. 2구역에 사는 기득권자집단은 한편으로 제일 잘 난 구성원을 기준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을 이상화하고, 다른 한편으로 제일 못 난 구성원을 기준으로 3구역에 사는 아웃사이더집단을 폄하함으로써 우월한 지위를 유지했다. 기득권자집단은 아웃사이더집단을 더러운 범죄자로 낙인찍었기 때문에 실제로 두 집단 사이에 범죄율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웃사이더집단은 스스로를 열등하게 생각했다.

 

기득권자집단이 아웃사이더집단에게 앵무새 죽이기를 한 것이다. 윈스톤 파르바의 세 구역 거주자를 중년 남성에 비유하면, 1구역 전문직종사자들은 멋진 중년 섹시한 남자고, 2구역 노동자들은 부유한 중년 성공한 사장이며, 3구역 노동자들은 청춘과 지갑을 빼앗긴 상실한 중년이다.

잉글랜드 중부지방 윈스톤 파르바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노 갈등을 연구한 사회학자 엘리아스는 불평등한 권력관계로 집단갈등을 설명함으로써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계급갈등으로 집단갈등을 설명한 마르크스의 경제결정론을 뛰어넘는다.

메이콤 카운티의 앵무새 죽이기 : 흑-백 갈등

잉글랜드 중부 산업도시 레스터 교외에 있는 윈스톤 파르바에서 서로 다른 두 노동자 집단간 갈등을 분석하여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라는 책을 펴낸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앵무새 죽이기의 무대가 된 메이콤 카운티에 적용하여 흑백갈등을 분석한다.

 

앨라배마 메이콤 카운티에서 백인은 기득권자집단이다. 설령 가난하고 심지어 글자조차 읽지 못할 정도로 무식하다고 할지라도 기득권자집단의 구성원으로서 백인이 누리는 특권은 흔들림 없이 확고하다. 반면에 흑인은 아웃사이더집단이다. 이상하게도 메이콤 카운티에서나 윈스톤 파르바에서 경제력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아무리 가난하고 더러워도 백인 로버트 이웰은 지배집단이고 아무리 잘 살아도 흑인 톰 로빈슨은 아웃사이더다. 게다가 메이콤의 백인들은 총기를 소지하고 있어서 기득권자집단 백인과 아웃사이더집단 흑인 사이에 권력격차는 윈스톤 파르바의 제2구역 기득권자집단 노동자와 제3구역 아웃사이더집단 노동자 사이에 권력격차보다 더 커진다.

 

권력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 백인은 권력과 지위를 독점한 채 흑인을 모든 권력과 사회적 지위에서 배제시켜버린다. -백 권력격차 때문에 흑인이 범죄를 저지르면 가혹하게 처벌하지만 백인의 범죄는 경미하게 다룬다. 백인은 흑인을 자기결점의 희생양으로 삼는다. 백인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흑인을 열등한 집단으로 낙인찍는 것이다.

 

자긍심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때문에 다른 집단의 가치를 희생시켜서라도 자기 집단의 가치를 높이려 한다. 그러나 안정적인 자긍심을 가진 집단은 대체로 온건하고 관용적인 태도로 아웃사이더를 대한다. 메이콤 카운티의 상실한 중년 백인집단은 자긍심이 취약했고 흑인들이 무서웠다. 그래서 흑인을 더럽고 나쁜 아웃사이더집단으로 낙인찍음으로써 백인의 사회적 지위를 튼튼하게 하고 자긍심을 높이려 했다. 그러나 멋진 중년, 백인 전문직종사자, 아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달랐다. 강한 자긍심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흑인들을 차별하지 않고도 그의 삶은 충분히 풍요롭다.

노버트 엘리아스는 문명화과정론으로 윈스톤 파르바의 노-노 갈등을 설명한 책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 말미에 《앵무새 죽이기》의 무대 메이콤 카운티의 흑-백 갈등도 분석한다.

메이콤의 흑-백갈등을 집단간 권력관계로 분석한 엘리아스의 연구는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인간이 왜 그렇게 앵무새 죽이기에 집착하는지를 잘 설명한다. 결국 상실한 중년 백인의 앵무새 죽이기로 말미암아 사회가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비합리적인 사회가 됨으로써 결국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사회가 된다. 그러나 멋진 중년 전문직종사자, 아티커스 핀치 변호사가 앵무새 살리기에 성공한다. 메이콤 카운티는 비로소 합리성을 회복하고 정상적인 사회로 되돌아간다.